작가 개인의 경험을 이미지로 그려내고 화면을 채워나가고 선과 면으로 끊임없이 층위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 일상적 일기를 형상으로 써 내려간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와 같이 그림을 그리는 정형준의 행위는, 거의 모든 작품을 <흙놀이>로 부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시기에, 어떤 행위에 천착하는지를 상징화하는 부제들을 등장시킨다.
정형준의 작업에서 흙은 소재나 재료의 성격을 넘어서서 주제 그 자체이다. 그에게 흙은 과수원을 경작하고 땅을 일구었던 어머니의 노동을 상징하기도 하고,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삶 자체를 상징한다. 전시되고 있는 작품인 <흙놀이(어머니와 8남매 연작)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어머니는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과수원 농사로 자식들을 키우고 가계를 이끌었다. 어머니의 노동은 단순한 일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위한 희생과 가족을 지켜내려는 삶의 태도 자체를 상징한다. 이는 정형준이 제작했던 <뭍에서 섬을 그리다, 엄마 따라하기> 영상 작업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는 일하시는 ‘엄마’의 행위를 그대로 따라 하고 또 모방함으로써 모든 것을 포용하고 지켜나가는 어머니의 삶의 태도까지도 배워나간다. 그 어느 곳보다 땅에서 보냈을 시간이 더욱 많았을 어머니의 모습은 그에게 ‘흙’ 그 자체이면서 삶의 수행성 자체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흙놀이를 하면서 성장해 왔던 것처럼,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면서 단순하게 ‘일’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사다난한 삶의 무게와 어려움을 흙을 통해 마음 수행을 했다고 볼 수 있다.